미국에서는 1873년 금본위제로 전환하는 법안이 제출된 후 1897년부터 본격적으로 금본위제를 시작했다. 1792년 미국 달러를 공용 지폐로 채택하는 경화 법에 버금가는 새로운 변화였다. 즉, 미 달러화와 금과의 완벽한 태환이 법적으로 보장되는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미국 금본위제의 시작
- 1792년 - 미국 달러화가 공용 지폐로 채택
- 1879년- 미국 금본위제 도입
미국이 남북전쟁 이후 1879년 금본위제도까지 가는 이정표들을 잠시 확인해 보자. 1789년 금과 은을 동시에 사용하는 복본위제를 거쳐 1834년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이 기존의 1:15에서 1:16으로 조정되었다. 1862년 남북전쟁 기간 중에 태환성이 없는 명목 화폐제도인 그린 백이 잠시 운영되었고, 1879년에 들어서야 고전적인 금본위제도가 채택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림상 자체가 미 서부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어차피 태환성이 없던 그린백을 퇴출시키는 한편 새로운 화폐제도를 결정함에 있어 금본위제가 성립될 경우 다음의 결과가 너무나도 뻔했다. 네바다주의 컴스톡을 비롯해 미국의 대표적인 은광들이 포진해 있는 서부 지역은 부를 상실하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부 지역은 복본위제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반면 JP 모건이 포진한 동부는 금본위제를 지지했다.
금본위제 시행 후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다
결국 금본위제가 채택되면서 미국은 값비싼 달러화 가치로 인한 디플레이션에 빠지고 만다. 달러화가 실물 자산보다 비싼 탓에 은행 속에 잠들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부족한 달러화로 물건을 거래해야 하니 물건 값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현상은 피할 수 없었다. 디플레이션이라 함은 화폐 가치가 높아져 실물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현상이다. 우리네 일상사에 비유하자면 부동산 자산이 축소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적은 현금을 동원해도 동일한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기에 돈 가치가 비싸진 것이고, 반대로 부동산은 그 매력을 상실한다.
디플레이션은 곧 생산자들의 이윤 축소를 의미하니 금본위제를 채택한 이후 1896년까지 매년 미국 물가의 평균 1.7%가 하락하는 심각한 디플레이션이 초래되었다. 그야말로 미 경제가 위축되는 위기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특히나 농산물 가격이 제조품에 비해 폭락함으로써 농업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 노출되어 버렸다. 농민들의 성난 민심은 미 연방 정부에게 크나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남북전쟁에서 패전한 남부 측의 정치적 기반이 농업이기에 농민들을 그냥 방치해서는 곤란했다. 어차피 미국의 농산물이란 언제나 초과 공급되는 상품이다 보니 농민들의 비중이 높은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소료 사태가 발생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렇다면 복본위제를 폐기한 후 금본위제로 돌아서려다 미국이 다시 한번 동서로 갈라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러한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금본위제도를 적용한 이후 1789년부터 1913년까지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미국은 이러한 우려 속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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