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전 종전 이듬해인 1919년 영국은 금본위제를 중단하고 만다. 이는 1차 대전 이후 피폐해진 상황에서 파운드화 가치를 유지하기에 그 부담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금본위 제도라는 것 자체가 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화폐의 금태환성을 보장할 수 있기에 전후 금태환성이란 곧 비싼 화폐를 상징하는 처절한 훈장에 불과했다. 궁극적으로 영국은 파운드화를 값싸게 유지시켜 평가절하 시킨 후 1차 대전의 손실을 무역 수지 흑자로 만회하고자 했다. 반대로 프랑스는 더욱더 금본위 제도를 강화해 갔고, 그 덕분에 루블화의 가치는 비싸질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가 믿고 있던 구석은 독일로부터 받아 낼 전쟁 배상금이었다.
영국의 금본위 제도 탈퇴가 무작정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파운드화의 금태환성이 사라지자 파운드화에 대한 슈요가 침몰하고 만다. 반대로 금본위 제도를 지속하는 미국의 월가 자본의 채권 유통력은 영국을 압도했다. 즉, 런던이 곧 금융 패권이라는 공식이 이미 깨져버린 것이다. 금융 패권이 이대로 넘어가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던 영국이 1925년 금본위제로 복귀한다. 영국이 금본위제로 귀환한 이상 미국은 급격한 금 유출을 경계해야만 했다. 이를 수행하는 가장 즉각적이고 유일한 방법은 미국의 이자율을 인상하는 것이다. 영국 파운드화나 미국의 달러화나 금태환성이 동일하게 보장될 것이라면 어차피 이자율이 높은 통화를 구매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이자율 인상은 내수 시장의 핵인 부동산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만약 이자율을 인상하지 않을 경우 금본위 제도 하에서 달러화의 매각이 발생할 것이다. 이는 곧 미국의 금을 매각하는 것과 동일하기에 미 연준의 금 보유량이 축소되는 결과로 귀결된다. 안타깝게도 1차 대전이라는 그늘 하에서는 이 정도의 인과율로 끝나지 않으니 문제였다. 갑-을-병의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준엄한 그 인과율을 확인해보자.
투자자는 달러화를 매각하고 파운드화를 매입한다. 미 연준의 금 보유량은 축소되고, 영란은행에 금이 축적된다. 미 연준이 이자율을 인상하지 않는다. 미 달러화에 대한 가치가 하락한다. 미국 신용도가 하락해 금융 비용이 증가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영국의 파운드화 가치는 상승한다. 영국 수출 가격의 상승으로 수출이 감소하고 경기가 악화된다. 영국은 독일에게 전쟁 배상금 상환을 대촉한다. 독일 내부에 큼 부담이 발생하고 국민 저항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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