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을 가치 저장의 수단으로 삼는 경제는 곧 그 가치가 사라져 부스러져 버리고 말 것이다. 아시아의 용이었던 청나라는 영국 뉴튼 경의 화살을 맞고 이무기로 전락하고 만다. 그 내용은 이렇다
- 청나라가 신규 국채를 발행할 경우 과거보다 더욱 많은 은을 동원해야만 만기 시점에 국채를 청산할 수 있다.
- 혹시 전쟁에 패배해 전쟁 보상금 의무가 지워진다면 보다 많은 은을 지급해야만 보상금 청산을 할 수 있게 된다.
-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하려고 해도 보다 많은 은을 지급해야 서양의 문물을 반입해올 수 있다.
이러한 화살들이 다발로 함께 터지며 청나라의 국부는 뜨거운 열기로 녹아버렸다. 한 푼의 은만으로도 크게 대접받던 시절은 지나가고 열 냥의 은을 모아야 겨우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은 값은 대폭락하고 말았다. 경제적 인과율은 이미 정해져 있다. 지정은제를 사용하는 청나라에서 은의 가치가 대폭락해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영국이 주도한 금본위 제도 하에 은 가격이 폭락하니 지정은제를 사용하던 청나라의 국부는 사정없이 찌그러져 버리고 만다. 여기에 1~2차 전쟁을 거쳐 청일 전쟁으로 연결되니 청나라의 빚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몰리고 말았다. 청나라의 뛰어난 수공업 제품은 영국 가공업을 뛰어넘는 품질로 영국으로부터 크게 손해 보지 않는 장사를 해나갈 수 있었다. 이에 영국은 전쟁으로 청나라와의 교역에서 반전을 도모한다. 청나라가 패배한 후 1842 난징조약에서 홍콩을 할양하고, 5개 항구를 개방해야만 했다. 이때 스페인 은화 2,100만 냥이 영국에게 넘어간다. 게다가 1872년 1온스 당 1.29달러였던 은의 가치가 1935년 1온스 당 25센트의 가치로 폭락해 버린다. 동 기간 동안 '은과 금'의 가치 비율은 1:15에서 1:80으로 떨어져 버린다. 백 년이 채 되지 않은 순간에 은 가치의 80%가 증발해 버렸다. 하지만 영국은 망해가는 청나라에 은을 계속 뽑아냈고, 결국 청아라는 역사에 종언을 고해야만 했다. 어차피 청나라는 멸망의 수순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 역사의 인과율이다. 이는 서양 금융 시스템에 대한 사전적 이해가 전혀 없는 가운데 강한 시스템과 충동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파괴 현상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국제 금융 시스템을 아우르는 핫머니의 존재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문민정부의 부덕한 거만함이 1997년 IMF 금융 위기를 초래한 것과 동일한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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