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경제, 음악 역사

1990년대 영국과 독일 화폐의 상관 관계

by 미끄덩덩 2021. 10. 19.

1990년 당시 독일의 이자율은 최대 10%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가입 이전의 영국은 15%에 달했다. 이제 가입 후 마르크화와 파운드화는 유럽 통화단위를 기준으로 ±6%의 상하 변동 폭을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10%대로 이자율을 내릴 수 있겠구나 하는 계산 속으로 1990년 영국이 유럽 통화 시스템에 가입했던 것이다.

이제 유럽 통화 시스템의 보호를 받아 상하 변동 폭 하에서 파운드의 가치가 고정될 참이다. 게다가 잠시나마 금리가 10% 대로 하락했다. 이렇듯 금리 부담도 줄이면서 환율 변동성도 줄이고자 가입했던 것이 유럽 통화 시스템이니 만큼 영국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과를 얻었다. 그동안 독일의 고금이 등쌀에 부득불 고금리 정책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영국이다. 드디어 겨우 숨 좀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찾은 것이다. 이제 같은 유럽 통화 시스템의 우산 하에 놓인 영국은 독일과 고정 환율대로 파운드를 마르크화와 교환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통일 이후 독일은 1990년과 1991년 9%대의 고금리를 계속 유지했다. 게다가 독일이 도통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통일 이후 마르크화의 가치 방어를 위해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마르크화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은 여전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금리 수준이라면 파운드화보다는 당연히 라인 강의 기적을 일군 통일 독일의 마르크화가 더 낫다. 이러다 보니 영국은 10% 이하로 금리를 도저히 내릴 여유를 갖지 못했다. 만약 독일보다도 금리를 인하할 경우 파운드화의 가치 하락은 불을 보듯 뻔했다. 마르크화 대비 고정 비율의 하한 변동 폭이 뚫릴 경우 영국 중앙은행은 파운드화의 가치 방어를 위한 소모적인 시장개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얄궂게도 독일의 물가 상승률이 1991년 상반기에 6% 그리고 하반기에는 5%대로 하락하고 말았다. 더욱이 1992년 초반에는 물가 상승률이 무려 3%대로 뚝 떨어지고 만다. 한마디로 고금리로 마르크화 가치도 방어하고 인플레이션도 잡아가며 승승장구하는 독일 경제였던 것이다. 어마어마한 강철 체력의 독일 경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국 입장에서 10%대의 고금리는 여전히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다. 하지만 마르크화와 상하 변동 폭 안에서 파운드화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의무 사항이다. 여국은 1991년 당시 독일이 밉지만 어쩔 수 없이 10%대의 고금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철 체력 독일에게 막혀 금리를 더 내릴 수가 없다. 괜히 고정환율제도인 유럽 통화 시스템에 발을 담근 것 같다. 영국은 후회가 막급이다. 그리고 고민은 갈수록 깊어졌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