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유럽 통화 시스템에서 탈퇴할까 생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대영제국의 체면 문제도 있고 곧바로 탈퇴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금리는 내릴까도 고민한다. 또한 언제까지 독일의 눈치를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도저히 내수 경기를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만약 금리를 내리면 파운드화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달러화 대비 파운드화 가치가 더욱 하락할 것임은 기정사실이다. 게다가 유럽 통화 시스템 하에서 영국 중앙은행이 마르크화 대비 파운드화의 고정 환율의 방어 의무를 가지고 있는 만큼 독일을 무시하고 혼자 금리를 내리기는 부담스럽다. 그 당시 영국의 고민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영국의 금리를 내리면서 파운드화의 가치를 유지하는 비법은 없을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다. 슬쩍 지갑을 열어보니 영국의 지갑 속에 외환 보유고가 보인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파운드화의 가치 방어를 위해 사용할 정도는 되는 듯하다. 금융 투자로 피같이 모다 둔 외환 보유고가 파운드화 가치 방어에 돈줄이 되어 줄 것이다. 만약 금리를 인하하면 파운드화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이다. 이때 영국은 외환 보유고로 가지고 있는 달러를 팔고, 그 돈으로 파운드화를 적극적으로 매입해 파운드화의 가치를 방어할 속셈이다. 영국은 이 계획인 두 가지 측면에서 장점이라고 자화자찬한다. 첫째, 파운드화의 가치를 유지함으로써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파운드의 가치가 유지되면 추후에 달러로 손쉽게 바꿀 수 있는 만큼 외환 보유고를 다시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외환 보유고가 많고 볼 일이다. 영국은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하지만 뜻과는 달리 1992년에 접어들면서 외부적으로 영국의 경제 체력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싸늘하다. 아무래도 파운드화의 가치 유지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이 투자자들 사이에 떠돌아다닌다. 시장에서는 서서히 파운드화의 가치 하락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환보유고라는 묘수를 발견한 영국은 공개적으로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영국은 파운드화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방어할 것이다.' 영국은 파운드화의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저금리 기조로 돌아갈 수 있는 신의 한 수로 외환 보유고를 선택했다. 실제로 그 선택은 신의 한 수였을까? 아니면 자폭이었을까?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면 위의 두 가지 장점은 곧바로 단점이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첫째, 자신의 화폐인 파운드화를 매입한다는 것은 곧 달러를 매도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이는 외환 보유고의 손실을 의미하면 국제 교역 및 국제 금융투자에 있어 영국의 신용도를 하락시키는 지름길이다. 둘째, 만약 파운드의 가치가 폭락하게 되면 달러 보유고를 다시 채워 넣기가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한 매우 어렵게 된다. 파운드화가 싸구려 통화가 되면 달러를 사들이는 데에 그만큼 많은 파운드화가 필요할 것임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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