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학사의 문체론에 관한 분석을 해보자. 특히 북한 정치체제 형성 포기 문단에 광범위하게 논의된 바 있었던 문체론에 관한 내용을 분석해본다. 그리고 이후 시대와 관련지어 북한 정치체제 이데올로기와 문학의 특성을 고찰하자.
북한 문체론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분석 대상은 '조선문학'에 등장한 평론 중 문체론에 관련된 것을 위주로 한다. '조선문학'은 조선 작가 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로서 명실상부한 북한 문학의 주요 생산 통로이기 때문이다. 북한문학사에서 문학예술은 관제적 성격으로 권력기관에 의해 통합 관리되었다. 때문에 체제하 권력 지향적 문학의 행간 속에서 북산 사회에 대한 본질적 탐구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북한문학사에서 문체론, 즉 문학 속에서의 언어와 문체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반종파 투쟁의 시기와 맞물려 도식주의와 기록 주의, 신비주의에 관한 비판에 시작될 무렵부터이다. 6.25 전쟁을 통해 남한의 사회적 담론과 문학적 담론이 유입되었다. 그 후 부르주아 반동 미학에 대한 공격이라는 문단 내부의 정치적 싸움에서 남로당파와 연안파, 소련파 등 그 추종 세력, 심정적 추종 세력까지 포함해 광범위하게 설전이 벌어진 때다. 당시의 문단은 숙청의 칼날 앞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이것을 미리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문학인들의 문제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조차 6.25 전쟁을 통해 사상적으로 혼란해졌다. 사회 경제적 주축세력인 농민들의 반항이 더욱 심화된 것을 느끼게 되었고, 농민들을 장악하기 위해서라도 농업협동화가 절실히 필요했다. 김일성이 농업 현동화를 단행해야 했던 직접적 계기는 북한 농민들이 국가에서 시행한 양곡수매사업을 거부한 사건이다. 북한은 토지개혁 이후 그리고 전쟁 이후 국가적인 양곡수매사업을 1954년에 실시했다. 당시는 양곡이 북한의 유일한 부의 원천이었으며, 양곡을 국가가 소유해야 노동자와 농민, 인텔리를 장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동의 상황은 사회주의 위성국들이 생각하는 모국 소련의 위상이 수정주의 여파가 컸다. 하루가 다르게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정치적 변동이기도 했다.
김일성은 이러한 혼란을 돌파하기 위해 국가적 통합 정책을 수립해야 했다. 그리고 반대세력인 정치적 권력집단과 그 심리적 동조자까지도 색출해 권력의 토대를 다져야 했다. 이때 인민 통합을 위해 내부적으로 수립한 정책이 바로 중국의 대약진 운동을 모방한 '천리마 운동'이었으며, 모택동의 '지식인의 사상개조와 정풍' 운동을 본떠 '방'의 방식을 따라 반대세력을 색출해냈다. 이러한 권력 수립의 투쟁을 통해 '주체'를 정립하고 민족과 전통이 결합한 사상으로 유일체제를 수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해방 직후부터 '대중 교양'의 선전매체 수단으로 문학을 적극 인식 활용한 전략적 전술이 뒷받침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북한의 정치적 국가 전략의 세부 전술 중 하나가 문체론이다. 북한에서는 6.25 전쟁 이후 문학 작품의 언어에 관해 치밀한 통제가 본격화된다. 사실살 문학인들의 자율적 내부 규제로 보기 어려울 만큼 언어와 문체에 대해 지나치게 심한 간섭이 본격적으로 실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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