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9월 16일 영국의 금리 인상 이후 중앙은행의 외환 보유고가 바닥났고, 파운드화의 가치 방어를 포기했다. 이제 이틀여 간의 영국과 독일의 승패를 결정해 볼 때, 독일은 기축 통화인 달러가 금고에 가득 생기므로 손해 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영국은 파운드화의 가치 방어를 위해 외환 보유고로 가지고 있던 달러를 탈탈 털어 헤지 펀드들의 손에 고스란히 넘겨주었다. 따라서 손해는 모두 영국의 몫으로 귀착된다. 영국의 달러가 독일에게 건너갔으니 현재 헤지 펀드들의 손에는 이틀 동안 사들인 마르크화가 듬뿍 담겨 있다. 영국은 달러 보유고의 대부분을 상실했고, 조지 소로스는 마르크화를 잔뜩 손에 쥐고 있다. 독일 역시 미 달러화를 잔뜩 손에 쥐고 있다. 따라서 독일이 잠정적인 승자라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지 소로스가 실제로 수익을 만들어 탈출하는 순서를 축약해보자. 작전의 최종 마무리 단계다. 영국에게서 한탕을 한 헤지 펀드 세력들은 자유변동환율제라는 아우토반을 달려 크루즈 유람선을 타고 유유히 탈출할 수 있었다. 즉, 마르크화와 달러화는 자유 변동하므로 헤지 펀드들은 마르크화를 달러로 자유롭게 교환해서 탈출하면 된다. 독일이 잠정적 승자라고 칭한 것은 갖고 있던 달러 자금이 최종적으로는 헤지 펀드들의 손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소로스의 탈출 순서는 다음과 같다.
- 단기단에 가치가 급등한 마르크화에 대해 달러화가 매우 싸다.
- 조지 소로스는 비싸진 마르크화를 값싼 달러화로 모두 환전한다.
- 원래 동원했던 달러 금액보다 훨씬 많은 달러를 챙긴다.
탈출 순서 3번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이를 자세히 알아보자. 달러화와 마르크화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은 매우 쉽다. 단기간에 외환 시장에서 1,100억 달러어치의 달러를 투매하고 마르크화를 매입한 셈이다. 따라서 마르크화 가치는 폭등하고 달러화는 폭락한 상태다. 이제 달러화로 바꾸어 떠나면 된다. 그 환전 단계를 순서대로 보면 아래와 같다.
- 어제 환율은 1$=20 마르크였다.
- 조지 소로스가 어제 1 달러를 환전해 독일로부터 20 마르크를 매입했다.
- 헤지 펀드 친구들 모두 오늘 마르크화를 함께 사들인다.
- 그래서 오늘 환율은 1$=10 마르크가 된다. 즉, 마르크화가 비싸진다.
- 조지 소로스가 가지고 있던 20 마르크를 오늘 환전하지 2달러가 생긴다.
- 2달러를 챙겨 들고 출국하니 수익률 100%를 기록한다.
결과적으로 소로스는 100억 불을 투자해 영국 파운드화를 투매함으로써 이틀 만에 10억 달러의 환차익을 거두었다. 이러한 일련의 모든 과정을 통틀어 검은 수요일이라고 칭한다. 검은 수요일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정책적 교훈은 '일국의 경제 수장이 자국의 통화 가치에 대해 함부로 약속하거나 발언해서는 곤란하다.'이다.
이는 비대칭 정보여야 할 자국의 경제 운용 정보를 대칭 정보화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렇다. 헤지 펀드들은 이를 철저히 이용한다. 이처럼 국제 금융 세력에 의한 '의도적인 외환 시장 교란 후 수익 챙기기'를 양털 깎기라고 한다. 보통 대외 환경 변화에 취약한 개발 도상국이 양털 깎기를 당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금융 산업의 종주국 여국도 바로 희생자였음을 알 수 있다. 산업의 대명사인 영국이 이러한 희생자였다는 사실은 꽤나 아이러니하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독일 통일 시점에 유럽 통화 시스템에 끼어들었다가 검은 수요일에 헤지 펀드들에게 용돈뿐만 아니라 차비까지 알뜰살뜰 챙겨 배웅해 준 격이 되었다. 검은 수요일은 영국에게 통화 동맹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후 독일의 콜 총리와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합의 하에 유럽 통화 시스템의 환율 변동 폭이 상하 ±15%로 확대되었다. 두 번 다시 검은 수요일과 같은 슬픔이 없기를 기원하는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깊은 묵념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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