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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음악 역사

하남시의 역사(신석기~청동기)

by 미끄덩덩 2022. 1. 23.

경기도 하남의 역사

선사 시대란 역사 시대에 대충 되는 개념으로 문자로 기록되기 전 국가 발생 이전 시대를 말한다. 선가 시대는 대체로 구석시 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등으로 구분되며, 이 시기에 대한 이해는 문헌이 없어 고고학적 검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하남시 시역의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결과를 가지고 기록해보자. 하남시 지역에서는 아직 구석기시대의 유물이나 유구가 발견된 것이 없고 신석기 이후의 것들은 미사동의 선사 유적지 발굴에 의해 나타났다.

신석기시대의 하남

하남시 지역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의 유물은 미사동 유적지 한 곳뿐인데 암사동 유적과 더불어 한강 하류 지역의 가장 중요한 선사 유적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지난 1960년 김원룡 박사에 의해 보고된 미사리 즐문토기 유적에 대한 역사 학보가 나간 이래 수많은 국내외 학자들의 내왕과 간단한 발굴이 시도되어 왔다. 그러나 지표조사 만에 그쳤고 1980년 미사동 유적 조사단에 의해서 본격적인 발굴이 시도되었으나, 이것도 붕괴 위험에 처한 이 유적을 긴급 발굴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다가 정부가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을 펼치면서 이곳은 경기도 공영 개발 사업단에 의해 치수상 한강 하폭을 늘려야 했다. 때문에 경기도가 여기에 대한 역사 유적 발굴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예산을 투입하고 서울대, 한양대, 고려대, 숭실대의 조사단에 조사 용역을 주어 1987년부터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작됐다.

미사동 신석기 유적은 암사동 유적과 그 성격이 거의 같다. 미사동 유적도 암사동 유적과 마찬가지로 2~3층 문화층으로 나타난다. 맨 위층은 교한 층이지만 주로 초기 백제나 삼국 시대의 토기가 출토되고 그 아래층이 평조의 무문토기 문화층, 그 아래가 신석기 문화층으로 나타난다. 이곳에서 출토된 빗살무늬 토기는 빚은 흙, 그롯 모양, 문양 등이 암사 유적과 유사하다. 빚은 흙은 사질토에 운모가 섞여 있으며, 석면이 섞인 것도 있다. 모양은 손으로 빚어 돌린 것으로서 적윤법을 썼다. 그릇 모양도 구연부는 다 곱게 되어 있고 바닥은 첨저(뾰족한 바닥), 원저(둥근 바닥)가 대부분 빗살무늬 토기의 형태다.

토기의 문양도 구연부, 동부, 저부를 구별하여 서로 다른 문양으로 하였고 또한 어골문 모양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석기도 냇돌을 이용한 타제 석분, 타제 스크레이퍼, 어망추, 연석 등이 발굴되었다. 특기할 것은 이 유적에서 발견된 석제의 그물바늘이다. 이것은 길이 7.6cm의 강암제로서 네모진 머리 부분에는 구멍이 있고 반대쪽 끝은 세모진 것이다. 네모진 몸에는 양측면에 금을 새겨 실을 감아서 썼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바늘은 완전한 마제품으로 대단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무문 토기 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될 수도 있다. 한편 미사동 유적 부근에는 거의 인접된 선동 신석기 유적이 있었는데 발굴도 하지 못하고 한강 개발로 흔적도 없이 물에 잠기고 말았다. 미사동 빗살무늬 토기인의 생활을 추측해 보면 당시의 가장 중요한 경제 활동은 어로였다. 이는 주거지가 강변에 위치한다거나 또는 어망추, 그물바늘의 존재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구석기시대 이래 오랜 전통이 되어온 수렵 활동도 행해졌을 것이다. 수렵 도구도 크게 발전하여 돌화살촉이 만들어졌고, 그 외 다양한 식물 채집도 있었음이 출토된 도토리와 이를 갈아서 식료를 만들 때 쓰는 연석을 통해 알 수 있다. 한편 돌낫과 돌도끼의 존재도 채집 활동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청동기 시대의 하남

청동기 시대의 유구와 유물도 역시 미사동 유적지에서 발굴되는데 이는 토기의 둥근 배, 무문, 평저의 청동기 시대 토기의 특징을 지닌 것이 나타났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주로 무문 토기편이 다수 발굴되었고, 석촉, 홍도편, 석착, 어망추 등이 나와 신석기시대와 같이 어업, 수렵, 농경 등이 생활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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