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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킹스턴 체제를 선택한 이유와 역사 닉슨의 금태환 중지 선언 이후 추락할 듯했었던 미 달러화의 가치였지만 페트로 달러 기능을 발판 삼아 완벽히 부활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미국은 1976년 과감하게 각 국의 통화가 자유 변동하도록 보장하는 킹스턴 체제를 채택했다. 이 당시 킹스턴 체제를 밀어붙였던 미국의 선택 이유를 알아보자. 먼저 미국이 봉착했었던 상황은 다음과 같아. 중동발 인플레이션으로 미국 내 인플레이션이 치솟고 있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킹스턴 체재를 선택한 이유는 3가지다. 인플레이션으로 미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는 와중에 스미소니언 체제에 준한 금 태환성을 보장하고 싶지 않았다. 달러화 환율이 자유 변동할지라도 페트로 달러 기능에 의해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달러화를 지속적으로 벌어들여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손해 볼.. 2021. 9. 4.
1929년 검은 목요일 시작되다 순차적으로 미국의 위기가 유럽으로 전염되면서 정세가 불안했던 독일 역시 자극을 받고야 만다. 이 당시 독일은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압박을 모두 견뎌내야 하는 신세였다. 궁지에 몰린 독일의 역사는 결국 2차 대전이라는 불운한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 흐른다. 이제 양 대륙 간의 교역은 거의 끊겨 버렸다. 쓸 만한 유럽산은 관세로 인해 가격이 뛰어 버려 미국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게 되었다. 유럽의 경기가 악화되는 와중에 보복 관세로 인해 미국산 상품 수출마저 대폭으로 줄어버렸다. 그제야 사람들은 스무트 홀리 법이 경기 침체에서 시작된 불황을 급기야 대공황의 늪으로 밀어 떨어뜨려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된다. 결국 독일의 숨통을 살리고 국제 교역에 치중해야 안정적인 전후 복구가 가능하다는 케인즈.. 2021. 9. 4.
대공황으로 이끈 스무트 홀리 관세법 1930년 6월 17일 이제 대공황을 진정한 대공황으로 이끈 자충수가 등장한다. 바로 스무트 홀리 관세법이다. 이 법은 미 하원 의원이자 자금 조달 위원회 의장이었던 윌리스(Willis C. Hawley, 1864-1941)가 농산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제출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경기 불황이 가시화되자 농민들의 소득 보전이 당장에 시급했었던 까닭이었다. 설령 공업은 침체될지라도 먹거리를 담당하는 한편 미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지원세력이자 원천인 농업을 결코 내팽개쳐 둘 수는 없었다. 여기에 농산품에만 관세를 추가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공업 기반의 주상원 의원들이 끼어든다. 이에 리드 스무트(Reed Smoot) 상원 금융위원회 의장이 공산품으로까지 관세 부과를 확대시켜 버렸다. 불황이 닥.. 2021. 9. 3.
영국의 금융패권과 금본위제의 관계 1차 대전 종전 이듬해인 1919년 영국은 금본위제를 중단하고 만다. 이는 1차 대전 이후 피폐해진 상황에서 파운드화 가치를 유지하기에 그 부담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금본위 제도라는 것 자체가 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화폐의 금태환성을 보장할 수 있기에 전후 금태환성이란 곧 비싼 화폐를 상징하는 처절한 훈장에 불과했다. 궁극적으로 영국은 파운드화를 값싸게 유지시켜 평가절하 시킨 후 1차 대전의 손실을 무역 수지 흑자로 만회하고자 했다. 반대로 프랑스는 더욱더 금본위 제도를 강화해 갔고, 그 덕분에 루블화의 가치는 비싸질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가 믿고 있던 구석은 독일로부터 받아 낼 전쟁 배상금이었다. 영국의 금본위 제도 탈퇴가 무작정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파운드화의 금태환성이 사라지자 파운드화에 대한.. 2021. 9. 2.